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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무엇인가?

시험에 빠진 네오 2026. 1. 24. 15:35

 철학은 본래 학문이다. 여기서 철학이 학문이라는 말은 철학이 학문이라는 범주에 속한다는 뜻이 아니라 철학이 곧 학문이라는 뜻이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철학이라는 말이 처음에 어떻게 탄생하였고 또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철학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서양학문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니시 아마네라는 사람이 philosophie를 철학이라 번역한 데서 유래한다. 당시에 같은 말을 리학(理學)이나 궁리학(窮理學)이라고도 번역한 예도 있으나 니시 아마네는 처음에 희철학으로 번역하였다가 최종적으로는 철학이라는 표현을 선택한다. 이후 다른 사람들이 철학이라는 단어를 쓰게 되면서 이 말이 보편화된다.

 philosophie는 본래 고대 헬라스어 φιλοσοφια에서 왔는데, 이 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σοφιαφιλια한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σοφια는 무엇이고 φιλια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 σοφια는 보통 지혜, φιλια는 보통 사랑으로 번역하니 φιλοσοφια를 직역하면 지혜를 사랑함이 되는데, 이는 마치 지식과는 대별되는 지혜가 있고 그 지혜를 소중히 여기고 추구한다는 뜻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과연 고대 헬라스인들도 이와 같이 옛 선현들의 지혜를 소중히 여기고 추구한다는 뜻으로 φιλοσοφια라는 말을 썼을까?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여 φιλοσοφια의 개념을 규명한 후에야 비로소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φιλοσοφια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피타고라스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한때 이탈리아 일대의 섬들을 여행하면서 피타고라스의 추종자들과 교유하며 그들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플라톤은 σοφια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φιλοσοφοι라는 말을 φιλοδοξοι에 대항해서 쓴다. 여기서 φιλοδοξοιδοξαφιλια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δοξα억견이라고도 번역되곤 하지만, 이는 객관적인 번역은 아니다. 왜냐하면 플라톤의 입장에서 이미 가치판단이 다 내려진 채 선택된 표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δοξασοφια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대의 시대상황과 플라톤의 문제의식을 이해해야 한다.

 먼저 플라톤은 φιλοδοξοι라는 말을 당대의 저명한 선생들이었던 소피스테스들을 가리켜 쓴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피스테스는 오늘날 우리말로 궤변론자로 번역이 되곤 하지만, 이 역시 당대의 소피스테스들에 대한 플라톤의 가치판단이 이미 반영되어 번역된 것으로 엄밀하게 말하면 적절한 번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소피스테스는 누구인가? 당대 헬라스에는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유력자들이나 그 자제들을 가르치며 살아가는 순회교사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소피스테스라고 불렀다. 사실 소피스테스라는 말도 직역하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소피스테스들은 플라톤이 살았던 시대 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플라톤과 동시대의 소피스테스들 중에는 학자로서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토론하기보다는 수사학에 기대어 상대방을 말로써 이기는 기술만을 가지고 민회를 호도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들이 군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올바른 주장을 하는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플라톤의 관점에서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도 그 희생자였으며, 이것이 플라톤이 그들을 φιλοδοξοι라 평가하고 오늘날 우리가 소피스테스들을 궤변론자라고 번역하며 나아가 플라톤이 민주정을 중우정치(衆愚政治)라 하여 혐오하게 된 배경이 된다.

 그렇다면 당대의 소피스테스들은 어째서 그런 얼토당토않은 주장들을 내놓게 된 것이었을까? 이에 관해서는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페르시아와의 전쟁 경험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안타까운 일도 일어나지만, 동시에 전쟁을 통해 문화가 섞이고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지난 300여 년간 우리는 서양이 중심인 사회를 경험하여 왔고, 오늘날 우리는 철학이라 하면 서양철학을 기본으로 하여 배우다 보니 고대 헬라스 사상이라 하면 그것이 세계의 중심부의 사상이라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당시에 헬라스는 세계의 주변부였고 페르시아가 중심부였다. 고대 헬라스 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관습을 가지고 살았지만,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계기로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페르시아의 문화와 관습을 접하게 되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혼란은 자못 컸다. 왜냐하면 한 문화권에서 절대적인 법칙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그렇게 여겨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법칙이 없어도 사회가 그런대로 잘 돌아가고, 심지어는 자신들보다 더 강대하고 융성한 나라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히 정의에 관한 관념의 차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리는 이러한 갈등을 플라톤의 고르기아스에서도, 그리고 국가(政體)에서의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코스의 논쟁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진리가 상대화된 세상에서 정의란 곧 힘으로 여겨졌고, 또 민주정체를 가지고 있던 아테네에서 이는 중우정치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곧 진리란 논리적인 탐구를 통하여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어느 주장에 동조함으로써 판명되는 상대적인 것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선동할 수 있는 자의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저마다 자신만의 진리를 주장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화해할 수 있을까? 여기서 화해란 서로 다른 주장을 펴는 이들이 저마다의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기준에 따라 다투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서로 동의할 수 있는 결론에 다다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이 세상은 결국 목소리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을 선동하고 동원하여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지배하게 되고 말 것이다. 이것이 플라톤이 당대의 소피스테스들을 φιλοδοξοι라 평가하고 φιλοσοφος가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 배경이 된다.

 그렇다면 플라톤이 주장한 φιλοσοφια의 예는 무엇인가? 플라톤은 그의 주저인 국가(政體)에서 젊은이들에게 시가(μυσικη)와 체육(γυμναστικη)를 가르치는 대신 산수(αριθμετικη)와 평면기하(γεωμετρια), 그리고 천문학(αστρονομια)을 가르쳐야 하며, 아직은 개발되지 않았지만 후대에 개발될 학문으로서 입체기하도 그 필수과목에 잠정적으로 포함시킬 것을 제안한다. 물론, 플라톤이 시가와 체육을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보다 논리적이고 실용적인 학문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플라톤은 이것들을 학문(μαθηματικα)이라 명명하는데, 이때 μαθηματικα가 오늘날 mathematics의 어원이 된다. 물론, 당대의 μαθηματικα는 오늘날의 수학과 그 범위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옛 사람들이 어째서 philosophie를 리학(理學)이나 궁리학(窮理學)으로 번역하려 했는지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플라톤의 주장 가운데 철인왕이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가 이 철인을 방구석에 앉아 사색이나 하는 자로 이해하는 한 우리는 플라톤의 이 주장을 오해하게 된다. 플라톤은 일인지배(μοναρχια)를 지지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플라톤이 민주정(δημοκρατια)을 지지했던 것도 아니다. 플라톤은 차라리 귀족정(αριστοκρατια)을 지지하는 편에 가까웠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귀족들의 파벌에 의한 정치(ολιγαρχια)를 지지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는 오히려 φιλοσοφος들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φιλοσοφος철인이라고 번역하기보다는 학자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는 실제로 국가(政體)에서 처음에는 한 사람의 φιλοσοφος가 다스리는 정치체제를 이상으로 제시하지만 뒤에서 그 정체의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할 때에는 여러 φιλοσοφοι가 다스리는 모습으로 그린다.

 그런 점에서 철학은 본래 학문이다. 학자가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그 학자들은 몽상가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세상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이다. 산수가 있어 상업이 발달할 수 있었고, 평면기하가 발달함으로써 토지측량과 건축술이 발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천문학을 통해 계절의 변화와 시간을 알고 그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파종을 하고 수확을 하는 농업이 가능할 수 있었다. 이 모든 학문들은 추상적인 학문들이지만, 결코 실생활과 멀리 떨어져 있는 몽상가들의 망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학문이 이런 실학자들에 의해서만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엉뚱하지만 그럴듯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기존의 학문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엉뚱하지만 그럴듯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항상 학문의 발전에 기여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훨씬 많은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해왔고, 학계는 그들의 주장을 사장시켰으며, 그것은 오늘날에 보아도 부당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학문의 자유란 아무 이야기나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다. 그 자유는 기존의 학문적 성과들과 우리의 인식지평 내의 범위로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지 그 가능성만을 논할 수 있을 뿐이며 그것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알지 못하는 것을 지금까지 우리가 정립한 학문의 체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만 조심스레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학문의 경계를 정한 것이 후대의 임마누엘 칸트의 업적이다.

 한편, 인류는 철학(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방대한 지식을 축적해왔으며, 그에 따라 한 사람이 모든 학문을 다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학문은 점차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왔다. 실은 오늘날의 자연과학도 본래 자연철학이라는 이름의 철학의 한 분과였다. 그러나 오늘날 자연과학에 속하는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등이 저마다의 계기로 철학에서 독립하여 하나의 분과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는 법학이라든지, 정치학이라든지, 경제학과 같은 다른 학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오늘날 철학은 그렇게 독립하여 떨어져나간 분과들을 제외한 나머지의 학문으로 남게 되었다. 이것이 철학을 본래학문이었다고 하는 이유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의 철학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삼라만상의 실체에 관한 학문들이 다 독립하여 떨어져나감으로 해서 오늘날의 철학은 다른 학문이 성립할 수 있는 전제가 되는, 가장 순수한 도구적, 형식적 학문으로 남았다. 가령 수학은 오늘날 자연과학과 공학이 성립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도구적 학문이다. 반면에 논리학은 모든 학문을 함에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학문이다. 논리학이 없이 성립할 수 있는 학문은 하나도 없다. 정치사상이나 윤리학 그리고 미학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다른 학문의 전제가 되는 도구적 학문들은 오히려 다른 학문들이 독립함으로써 가장 근본적인 학문으로 남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이라는 분과 내에 아직도 독립하지 못한 미분화된 영역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분화된 영역들은 아직 인간의 인식지평이 그 학문들을 독립된 분과로서 다룰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거나 혹은 그럴 수 있을 만한 경제적, 기술적 제약 때문에 독립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도 학문의 분과는 계속해서 이루어질 것이며, 그런 점에서 철학은 이 세상 모든 학문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학문을 잉태하고 있는 학문의 어머니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철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학문 중의 학문이다. 그것은 모든 학문의 전제가 되는 도구적 학문이라는 점에서, 즉 철학이 없이는 다른 학문이 학문을 수행할 도구가 제공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둘째, 철학은 학문에 관한 학문이다. 이것은 그동안 세상의 물성에 관한 제 학문이 독립한 결과 나타난 현상으로 철학이 학문 일반의 학문하는 방법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끝으로 셋째, 철학은 모든 학문의 어머니다. 이에 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모든 학문이 철학에서 나왔으므로. 그래서 결국 돌고 돌아 철학은 본래 학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