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다른 블로그에 올려두었던 것을 옮겨옴. 그리고 일부 수정함.(주로 원어의 발음 및 영어번역 추가)
플라톤의 국가(政體) 요약
개요
디케란 무엇인가? 한 사람의 디케를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폴리스의 디케를 생각해보자. 폴리스의 수립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일부의 행복이 아니라 한 집단 모두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폴리스는 분업화 되어 있는데, 이 분업은 각 사람의 성향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고, 저마다 맡은 본분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디케다. 그런데, 최선의 정체와 최선의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의견을 버리고 사실에 근거한 지식, 즉 학문(필로소피아)이 기반이 되고, 학문에 근거하여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따라서 최선의 나라에서는 학자(필로소포스)들이 통치하며, 청년들에게는 현란한 말로 치장된 시가가 아니라 학문을 가르쳐야 한다. 이 학문은 수학과 평면기하학, 천문학, 그리고 아직은 정립되지 않았지만 후대에 정립될 입체기하학이 기본이 되어야 하며, 이 네 학문 위에 세상을 총체적으로 보기(σύ́νοψις, synopsis, 시놉시스) 위한 변증술이 더해져야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을 읽기 전에 박종현 교수가 번역한 《희랍 철학 입문》 과 《헬라스 사상의 심층》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또한 《국가》보다 후기의 작품이지만, 《소피스테스》를 먼저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당시는 시대도 다르고 문화적 배경도 다르다. 이 책뿐만 아니라 고전을 읽을 때에는 오늘날의 시선을 벗어나 당대의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희랍 철학 입문》과 《헬라스 사상의 심층》을 통해서는 당대가 어떤 사회였으며, 플라톤이 어떤 고민을 하였는지를 대략 엿볼 수 있고, 《소피스테스》를 통해서는 당대에 유명세를 탔던 소피스테스들과 그들에 대한 플라톤의 평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박종현 교수께서 번역한 책에는 로마자로 표기한 헬라스어가 병기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 이 단어들의 뜻과 어원도 일일이 찾아보면 내용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필자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는데, 운이 좋게도 한 독자가 이 단어들의 의미와 어원을 거의 대부분 찾아놓아서 좀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중에 몇 가지 단어만 언급하고 넘어가려 한다.
δί́κη 또는 δικαιοσυνη / αδικί́α
이 책에서 디케 또는 디카이오쉬네는 통상 '정의'나 '올바름'으로 번역되어 있다. 또 그 반대말인 아디키아는 '올바르지 않음'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이 단어들의 의미는 좀 더 포괄적이다. 디케는 본래 '관습(custom)'을 기본 의미로 하고, 이에 더해 '관습이 굳어진 것', 즉 '질서'나 '법', '옳음', 그리고 '판단, 판결, 소송, 재판', 나아가 '형벌, 벌금, 복수, 변상' 등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플라톤의 《국가》 1권에서는 디케가 무엇인지를 두고 트라쉬마코스와 소크라테스의 논쟁이 벌어지는데1, 여기서 디케는 '관습' 내지는 '사회질서'로 번역한다면 이를 '올바름'으로 번역했을 때보다는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이 덜 난해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는 나름대로 현실에서 목격한 디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반면에 소크라테스는 디케의 정의를 사람들의 내심 바라는 희망에서 도출함으로써 현실에서 나타나는 디케와는 거리가 멀지만 모두가 바라는 디케의 이상, 혹은 본(παραδειγμα, 파라데잉마, paradigm,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디케는 또한 '질서'로 이해함직하다. 책 전반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나타나는 플라톤의 인식은 퓌타고라스 학파의 색채가 묻어남을 발견할 수 있다. 디케에 대한 그의 인식 역시 마찬가지다. 디케를 '질서'라고 했을 때, 그 질서는 다분히 퓌타고라스적인 질서다. 이러한 배경을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앞서 언급한 두 책과 플라톤의 《고르기아스》를 먼저 읽어볼 것을 권한다.
디케에 대한 정의가 다르므로 아디키아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도 차이가 난다.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린 플라톤)는 아디키아를 퓌타고라스적 질서에서 벗어난 것으로 이해한다. 반면에 트라쉬마코스는 디케를 '강자의 편익', 즉 강자가 규정한 '사회질서'로 이해하고 아디키아를 이러한 질서를 반하는 모든 것으로 이해한다. 트라쉬마코스는 아디키아를 작게는 '편법'이나 '소소한 경범죄'로부터, '불법', 그리고 반란이나 정복과 같은 '질서의 전복'의 의미로 사용한다. 따라서 그는 '가장 완벽한 아디키아'는 '가장 좋은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반면에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질서의 전복도 디케(질서정연함) 없이는 가능하지 않으므로 아디키아는 결코 '가장 좋은 것'이 될 수 없다고 단정한다. 이렇게 이 둘의 디케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감안하여 이 책의 1권을 읽으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κοινωνί́α
플라톤의 《국가》 5권에서는 코이노니아를 다룬다. 코이노니아의 어원이 되는 κοινός는 재구된 인구어로는 *ḱomyós에서 유래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여기서 *-yós는 접미사이고 *ḱóm은 '함께'라는 뜻이다. κοινός는 '일반적인', '공적인', '중립적인', '공유하는'의 의미를 가지고, 오늘날 헬라스어에서 '코이노니아'는 일반적으로 공동체나 사회,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훗날 기독교에서는 이 말을 성도의 사귐, 성찬을 나눔 등의 의미로 확장시켜 사용하였고, 이는 오늘날의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다.)
플라톤의 《국가》 4권에서 소크라테스는 지배계급의 공동생활(코이노니아)을 언급하면서 짤막하게 '처자들의 코이노니아'를 언급하는데, 5권에서는 그의 제자들은 이를 '처의 공유'로 오해하고서 반문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언급한 '처자들의 코이노니아'란 '처의 공유'가 아니라 '여성들의 공적 활동'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공적 활동에는 성생활도 포함이 되기는 하지만(참고로 '코이노니아'에는 '성교'란 의미도 있다.), 이것은 즐기기 위한 성생활이라기보다는 공적 활동의 일환으로서 지배계급의 사유재산을 폐지하고 아이들의 아버지를 알 수 없게 하려는 의도가 더욱 강하다.
φιλοσοφια
필로소피아는 일반적으로 '철학'으로 번역하곤 한다. 그리고 때로는 '지혜를 사랑함'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이는 이 말의 어원을 잘 밝힌 것이다. 하지만, 나는 플라톤의 《국가》를 읽으면서 필로소피아가 가리키는 것이 오늘날의 철학보다 훨씬 넓은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7권에서 그는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필로소피아로서 수학과 기하학, 그리고 천문학을 제시한다. 이 학문들은 오늘날의 자연과학의 기본이 되는 학문들로서 오늘날의 철학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학문들이다.
플라톤의 필로소피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이 말을 무엇에 대조하여 사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역사적 배경은 어떠하였는지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필로소피아에 대한 논변은 사변적 논쟁으로 전락하고 만다. 당대에는 '소피스테스'라 불리던 순회교사들이 있었다. 이들은 본래 지식인들로서 한때 정치가들의 순회교사노릇을 했다. 그런데, 훗날의 소피스테스들은 지식은 없이 현란한 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기술만을 전파하고 많은 돈을 받아갔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배경에서 싹텄다고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이들의 주장을 '지식'이 아니라 '의견'(δοξα, 독사)으로 일축해버리고 참된 지식을 찾는 데 몰입한다. 여기서 '의견'이란 실제의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가리킨다. 결국 이런 '사견'에 사로잡힌 사람들(φιλοδοξοι, 필로독소이)이 아니라 '참된 지식'과 '참된 지혜'에 사로잡힌 사람들(φιλοσοφοι, 필로소포이)이 길러져야 한다는 것이 이들 주장의 요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권인 10권에서 현란한 말들로 치장되었지만 형상은커녕 실물조차 만들어내지 못하는 시가가 아니라 필로소피아에 젊은이들의 교육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플라톤의 필로소피아는 오늘날의 시선에서는 차라리 '학문' 또는 '(맹아적 형태의) 과학'으로 표현함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물론, 그것은 오늘날의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은 결코 아니다. 다만, 시대 배경을 고려했을 때 그의 노력이 그와 유사하다는 말이다.)
존재, 존재에 대한 관상, 지성에 의한 앎, 인식
플라톤의 존재론은 훗날 자연과학으로 발전한다. 여기서 말하는 존재란 좀 단편적으로 말하자면 수(數), 그리고 사물이 수와 연관되어 형성하는 각종 관계들이라 할 수 있다. 존재에 대한 관상이란 이러한 사물들이 존재하고 작동하는 원리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가리키며, 지성에 의한 앎과 인식과 그와 다르지 않다. 이것을 좀 더 현대적으로 해석해보자면 이러한 인식의 활동은 과학적인 이론을 수립하고 그것을 검증함으로써 만물에 적용되는 법칙을 이해하고 보다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는 총체적인 학문적 활동이라 해볼 수 있겠다.
Μαθηματικη
이건 그냥 상식으로 알아두면 좋겠다. mathematics(수학)의 어원이 된 헬라스어 마테마티케는 그 원형이 마테마티코스이고, 마테마티코스는 '마테마'와 접미어 '-티코스'가 합쳐진 말이다. '마테마'는 '만타노'라는 동사와 '-마'라는 접미사가 합쳐진 말인데, '-마'라는 접미사는 보통 그 앞에 오는 활동을 통해 생산된 결과물을 가리킨다. 가령 지성적 활동의 결과물을 '노에마'라 하는데, 이 말은 지성적 활동인 '노에시스'의 결과물(노에마)이다. '만타노'는 배운다는 뜻이다. 즉, 마테마티코스는 본래 학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후에 '수학'이라는 뜻으로 그 의미가 축소된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政體)의 목차
1. 서론: 디케란 무엇인가? 한 사람의 디케를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폴리스의 디케를 생각해볼까?
2. 본론: 폴리스와 인간
2-1) 소서론: 폴리스의 수호자를 위한 교육의 실태 - 시가와 체육
2-2) 본론1: 코이노니아의 본
2-3) 본론2: 최선자 정체와 최선의 인간
2-4) 본론3: 쇠퇴한 정체와 타락한 인간
2-5) 소결론: 행복
3. 결론: 시가가 아니라 학문을 가르쳐야 한다.
3-1) 결론1: 최선자를 위해서도, 최선자 정체를 위해서도 시가가 아니라 학문을 해야 한다.
3-2) 결론2: 덕에 대한 가장 큰 보상
1. 서론: 디케란 무엇인가? 먼저 폴리스의 디케를 생각해보도록 하자. (1권 372a ~ 2권 368d)
소크라테스(Σωκρά́της)가 케ᅗᅡᆯ로스(Κέ́φαλος)에게2 노령에 재산을 가짐으로써 무슨 덕이 있는지 묻자 케팔로스는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사인에게나 신전에나 빚진 것이 없이 저승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디케(δί́κη)란 무엇인지, 그것은 단지 정직함과 갚을 것을 갚음인지 묻자 케팔로스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의 아들 폴레마르코스에게 논의를 상속하고 떠나고, 폴레마르코스는 각자에게 갚을 것을 갚는 것, 그리고 각자에게 합당한 것을 주는 것이라고 답한다. 이를 듣고 있던 트라쉬마코스가 반론을 하고, 소크라테스가 이에 재반론을 펼치면서 디케에 대한 논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트라쉬마코스에 따르면 디케란 강자의 편익이며, 각자의 편익은 아디키아(αδικί́α, α-(anti-) + δικη(디케) + -ια(접미사), 즉 디케를 거스르는 것 또는 디케의 반대)가 된다. 그리고 완벽한 아디키아는 좋은 것이다. 가장 완벽한 아디키아가 강자를 교체하면, 그가 다시 새로운 디케의 기준이 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반론한다. 뭇 존재는 저마다 본분이 있는데, 통치자의 본분은 피치자의 편익을 두루 챙기는 것이다. 강자의 편익을 추구하는 자가 ‘참된 통치자’일 수 없다. 따라서 ‘강자의 편익’은 (정의상) 디케가 될 수 없다. 또한 디케(질서정연함) 없이 체제를 전복할 수도 없으므로 아디키아가 가장 좋은 것이 될 수도 없다.
트라쉬마코스가 소크라테스와의 논변을 너무 쉽게 포기해버리자 글라우콘(Γλαύ́κων)이 다시 질문하며 디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자 한다.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에게 디케는 그 자체로 좋은 것인지, 아니면 그 자체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결과가 좋아서 좋다고 하는 것인지 묻는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디케는 그 자체로도 좋지만 결과도 좋은 것이라고 답한다. 글라우콘이 뭇사람들의 여론을 들어 재반론하자 소크라테스는 한 사람의 디케를 탐구하기 위해 먼저 폴리스의 디케를 고찰해보자고 제안한다.
2. 본론: 폴리스와 인간 (2권 368e ~ 9권 592b)
2-1) 소서론: 폴리스의 수호자를 위한 교육 실태 – 시가와 체육 (2권 368e ~ 3권 412b)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으며,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최소한도의 나라, 즉 가정이 수립된다. 그리고 이 가정은 또 다른 물자를 수급하기 위해 좀 더 많은 분업적 관계를 만들어 나가게 되는데 이로써 참된 나라가 수립된다. 이 나라가 호사스러운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물자와 이를 생산할 땅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로써 전쟁의 위험이 생기게 되고 나라에는 수호자들이 필요해진다. 그렇다면 이 수호자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수호자들의 교육은 시가(μουσική, music)와 체육(γιμναστικη, gymnastics)으로 이루어진다. 그중 시가는 설화(μυθος, myth)와 노래(μελος, melody)로 이루어진다. 설화에는 사실과 허구가 섞여 있는데, 신화에서 신과 영웅에 대한 나쁜 면을 밝히는 이야기는 허구로서 신화에서 지워버려야 한다. 한편, 노래는 가사(λογος, 로고스, logos, word)와 선법(αρμονια, 하르모니아, harmony), 리듬(ρυθμό́ς, 뤼트모스, rhythm)으로 이루어지는데, 선법과 리듬은 가사를 따라야 한다. 종합하면, 시가는 좋은 말씨와 조화, 우아함, 그리고 단순함(ευεθεια, 에우에테이아)을 추구해야 한다. 시가(τα μουσικα, 타 무시카, the music)는 아름다움에 대한 탐닉(τα του καλο ερωτικα, 타 투 깔로 에로티카)이라고 정의하며 시가에 대한 논변을 마친다.
체육은 생활양식(δί́αιτα, 디아이타, diet)과 의술(ιατρικη, 이아트리케)로 이루어진다. 생활양식은 단순한 것이 좋고, 무절제를 질병을 낳는다. 한편, 의술은 혼에 대해서는 판결과 같은 것으로, 재판관은 건전하지만, 그가 건전한 이와 병약한 이를 두루 사귐으로써 혼의 온갖 성향을 알게 되듯이 의사도 혼으로써 몸을 치료한다. 결론적으로 체육은 단지 몸(σωμα, 소마, soma)을, 시가는 혼(ψυχη, (ㅍ)쉬케, psyche)을 보살피는 것이 아니다. 시가와 체육이 모두 혼의 격정적인 면(το θυμοειδες, 토 튀모에이데스)과 애지적인 면(το φιλοσοφον, 토 필로소폰, philosophic), 둘의 적절한 조화를 위해 제도화된 것이다.
2-2) 본론(1): 코이노니아의 본 (3권 412b ~ 5권 471e)
소크라테스는 교육에 이어 폴리스에는 통치자가 필요한데, 그들은 사유재산을 가져서는 안 되며, 단지 생활필수품만을 보수로 받으며, 또한 공동식사와 공동생활을 영위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자 아데이만토스는 그들이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며 반문하자 소크라테스는 폴리스의 수립 목적을 상기시킨다. 그에 따르면 폴리스는 일부가 아닌 한 집단 전체의 행복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수립되었다.
소크라테스는 훌륭한 폴리스의 본을 제시하는데, 이는 성향에 따라 수립된 나라이다. 그리고 그 성향이란 통치자의 지혜(σοφια, 소피아, sophia), 수호자의 용기(ανδρεια, 안드레이아), 그리고 폴리스 구성원 모두의 절제(σωφροσυνη, 소프로쉬네)와 정의(δικαιοσυνη, 디카이오쉬네)인데, 여기서 ‘절제’란 지성에 따른 판단에 따라 온 폴리스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는 것이며 ‘정의’란 일종의 질서로 폴리스가 수립된 각 성향(기능)에 맞게 저마다 제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한편, 폴리스가 성향에 따라 수립된 것처럼 한 사람도 네 가지 성향이 공존하는데, 그것은 지식(επιστημη, 에피스테메, episteme)과 기개(θυμος, 튀모스), 욕구(επιθυμια, 에피튀미아), 그리고 정의이다. 여기서 ‘정의’란 폴리스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기개가 지식의 편에 서서 혼의 지배적인 부분과 피 지배적인 부분이 반목하지 않고 일치단결하여 각 부분이 맞은바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만약 이 지배와 피지배가 서로 반목하여 내분에 빠지게 되면, 분업이 파괴되고, 소크라테스는 이를 아디키아라 한다.
소크라테스는 이쯤에서 훌륭함과 나쁨을 정리하고 다음 논의로 넘어가려 하나 제자들이 수군대다 아데이만토스가 소크라테스가 코이노니아에 관해 설명하면서 언급한 ‘처자들의 코이노니아’에 대해 반문한다. 그들은 ‘코이노니아’를 ‘공유’로 해석하고 ‘처자들의 코이노니아’를 ‘처의 공유’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소크라테스가 처자들의 것을 비롯하여 코이노니아를 다시 설명한다.
소크라테스가 언급한 ‘처자들의 코이노니아’란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그 성향에 따라 공적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성별이 기능을 정한 게 아니고 앞서 언급한 네 가지 성향이 기능을 정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가 남성 지배계급이 어떠해야 하는지 언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 지배계급도 공동생활에 참여해야 한다. 이 공동생활에는 물론 성생활과 출산, 양육도 포함된다.(지배계급의 군혼제) 왜냐하면 이들은 어떠한 사유재산도 가져서는 안 되므로 이들이 아이를 낳더라도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소크라테스는 여러 나라의 실존하는 정체를 비교해보자고 한다. 이에 많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자유민들이 사는 아테네에서는 통치자들이 친척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기 위해서는 지배계급의 코이노니아가 중요함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들에게서 사유재산이 폐지되고 ‘공동의 것’이 됨으로써 분쟁이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정체가 실존 가능한가? 글라우콘이 묻는다.
| 데모스가 통치하는 나라 | 많은 다른 나라 | 아테네 | |
| 평민 ↔ 평민 | πολιτης(폴리테스, 시민) | πολιτης(폴리테스, 시민) | |
| 평민 → 통치자 | αρχων(아르콘, 입법자) | δεσποτης(데스모테스, 군주) | σωτηρ, επικουρος(소테르, 구원자, 에피쿠로스, 보조자) |
| 통치자 → 평민 | 부양자, 고용인 | δουλος(둘로스, 노예) | |
| 통치자 ↔ 통치자 | συναρχον(쉰-아르콘, 공동입법자) | 친척 | συνφυλακες(쉰-필라케스, 공동수호자) |
2-3) 본론(2): 최선자 정체와 최선의 인간 (5권 471e ~ 7권 541b)
글라우콘의 질문에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정치체제는 올바른 정치체제의 본(παραδειγμα, 파라데잉마 또는 파라데이그마, paradigm, 패러다임)일 뿐임을 실토한다. 그리고 어떤 조건에서 실현 가능성이 클지, 그리고 현 체제에서는 최소한 무엇을 변혁함으로써 이러한 정체로 옮겨갈 수 있을지 현 상태를 진단해보자고 한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학자들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어야 함을 천명한다. (이른바 ‘철인치자의 나라’)
그렇다면 철인(φιλοσοφος, 필로소포스, philosopher)이란 누구인가? 그는 주관적인 의견(δοξα, 독사)에 빠져 있는(φιλος, 필로스) 사람이 아니라 참된 지혜(σοφια, 소피아)에 빠져 있는(필로스) 사람이다. 그에 따르면 보이는 사물은 존재의 본질이 아니며 사물을 그 본질이 보여지는 매개물일 뿐이다. 그 본질은 감각이 아니라 지성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은 수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과 그것들의 관계로 이루어진 원리임이 후에 밝혀진다.
철인의 본성은 무엇인가? 그들은 우선 진리(αληθεια, 알레테이아)를 좋아한다. 그러나 진리보다도 지혜와 더 친근하다. 그들은 협량(σμικρολογια, (ㅅ)미크로-(을)로기아, 狹量)을 멀리하고 넓은 도량(度量, μεγαλοπρεπεια, 메갈로프레페이아)을 품어야 한다. 즉 존재의 본질에 대한 협소한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존재(ουσια, 우시아)의 전체적인 모습을 바라보아야(θεωρια, 테오리아, theory, 관상, 이론) 한다.
그렇다면 철학(학문)이 비방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소피스테스들 때문이다.
법률의 제정(立法, νομοθεσια, 노모테시아)과 관련하여 최선의 것들이 실현되기 어렵기는 하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장 엄밀한 의미의 수호자들(φυλακες, 퓔라케스)로는 학자들(φιλοσοφοι, 퓔로소포이, philosophers)이 임명되어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이제 태양의 비유, 선분의 비유, 그리고 동굴의 비유를 들어 의견과 이해, 그리고 주관의 네 가지 상태에 관해 설명한다. 앞의 두 비유에서는 의견과 참된 인식의 차이에 관해 설명하고, 동굴의 비유를 통해서는 그 참된 인식을 얻게 된 학자들이 이제 공동체로 되돌아가 그들을 참된 인식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학자(지도자)는 폴리스에서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라 폴리스가 낳아 기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성된 것(γιγνομενον, 깅노메논 또는 기그노메논)으로부터 실재(το ον)로 혼을 전환(ψυχης περιαγωγη, (ㅍ)쉬케스 페리-아고게)시키기 위한 교과는 무엇인가? 첫째는 수학(αριθμητικη, 아리트메티케, arithmetics)이다. 둘째는 (평면) 기하학(γεωμετρια, 게오메트리아, geometry)이다. 넷째는 천문학(αστρονομια, 아스트로노미아, astronomy)인데, 천문학은 입체의 운동에 관한 교과이므로 셋째로 입체기하학을 다뤄야 하겠다. 그러나 입체기하학은 아직 발달하지 않았으므로 후대의 과제로 남겨두기로 한다. 그리고 이 네 가지 교과 위에 변증술(διαλεκτικη, 디알렉티케, dialectics)을 올려놓아야 하겠다. 이 교과들은 모두 학습자를 편협한 의견(δοξα, 독사)에서 참된 인식(νοησις, 노에시스, knowing, 지식)으로 이끌어주고 포괄적인 시각(σύ́νοψις, 쉰-옵시스, synopsis, 시놉시스)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최선자들의 정체가 학자들이 다스리는 나라이며, 최선자들인 학자들을 기르기 위해 어떤 교과를 가르쳐야 할지까지 고찰한 뒤, 이제는 나이대별로 어떤 학습을 해야 할 것인지 설명하고 최선자 정체와 최선자에 대한 논변을 마친다.
2-4) 본론(3): 쇠퇴한 정체와 타락한 인간 (8권 543a ~ 9권 579b)
소크라테스는 앞서 훌륭한 상태는 하나인데, 나쁜 상태는 여럿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최선자 정체와 최선자에 대해 고찰해보았으니 이제는 그로부터 쇠퇴한 정체와 그로부터 타락한 인간들을 고찰해볼 차례다.
그는 쇠퇴한 정체를 네 단계로 나누고, 사람도 그와 같이 나눈다. 첫째는 라코니케형 정체로 명예를 추구하는 정체(φιλοτιμος πολιτεια, 퓔로티모스 폴리테이아(티모스를 추구하는 정체), τιμοκρατια, 티모크라티아(티모스에 의한 통치), τιμαρχια, 티모 아르키아(티모스에 의한 다스림))와 그런 사람이다. 이러한 정체는 적기가 아닌 때에 완전하지 않은 아이들이 태어나 수호자가 됨으로써 생긴다. 이들은 수호자 구실을 잘 해내지 못하며, 이로써 덕을 따르는 무리와 돈벌이를 따르는 무리로 나뉘어 내분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결국에는 중간선에서 합의를 보게 되어 땅과 집들을 사유화하고 그들이 수호했던 이들을 노예로 만들고 전쟁에 골몰하게 된다. 이러한 정체에는 경쟁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어울리는데, 이들은 잘 다스려지지 않는 나라에서 훌륭한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나곤 한다. 훌륭한 아버지는 이들을 슬기로운 사람으로 이끄나 다른 사람들은 욕구와 격정적인 부분으로 이끌다 보니 자신의 주도권을 격정적인 부분에 넘겨주어 명예를 추구하고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이 탄생한다.
둘째는 과두정(ολιγαρχια, 올리가르키아, oligarchy)이다. 이것은 명예(τιμη, 티메)의 결과로 생긴 재산(τιμημα, 티메마)에 근거한 정체로서 이 정체에서는 부자들이 통치하고 가난한 이들은 통치에 관여하지 못한다. 이 정체에서는 무장한 대중을 이용하게 됨으로써 점차 분업을 무너뜨려 간다. 이러한 정체에 어울리는 인간은 그의 아버지가 정적과 싸우다가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재산을 몰수당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탄생한다. 그들은 가난으로 비천해진 나머지 조금씩 절약하며 재산을 모으게 되고, 이렇게 명예를 사랑하던 이들이 재물을 사랑하는 자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민주정이다. 과두정에서는 만족할 수 없는 욕망으로 가산을 탕진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한편, 이들의 재산을 사들여 더 부유해지는 이들도 생겨난다. 이들 중 가난해진 이들은 무장을 갖춘 채 빚을 지고 시민권을 박탈당한 상태로 무위도식하게 되는데, 이에 이들은 혁명을 꿈꾸게 된다. 그런데 부자와 빈자가 전투에 나섰을 때 빈자는 부자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빈자들이 부자들을 이겨 평등한 사회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민주정에서는 대중의 호감에 따라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정체에는 다양한 성격을 가진 이들이 가득 찬다.
마지막으로 참주정과 참주다. 민주정 하에서는 민중의 선도자가 가진 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민중에게 나누어주는 선동을 하게 되고, 이에 따라 탄핵과 재판, 소송이 잇따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민중의 선도자가 추방되기라도 하면, 그는 민중에 자신을 위한 경호대를 요청하게 되고, 이로써 그는 완벽한 참주가 되어 귀환하게 된다. 참주적인 인간은 민주적인 관습 속에서 만들어진다. ‘완전한 자유’라고 불리는 갖은 불법(παρανομια, 파라-노미아) 속에서 그의 가족들은 그 중간 상태에 있는 욕구를 지원해주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에게 정욕(ερως, 에로스)으로 인도한다. 이로써 처음에는 유익하고 부끄러움을 알게 하던 의견들(δοξα, 독사)의 종노릇 하던 의견들(μανια, 마니아, mania)이 이제는 에로스를 경호하며 에로스와 더불어 참되고 좋은 의견들을 지배하게 된다. 실은 에로스(Ερως)가 진정한 참주인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참주다. 그는 참주적인 인간보다도 더 비참한데, 이는 그가 어떤 불운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참주가 되어 참주적인 인간이 사인으로서 누리는 일생조차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온갖 두려움과 욕정에 가득 차 심지어 외국 여행도 가지 못하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감옥에 갇혀 살게 된다.
2-5) 소결론: 행복의 순서 (9권 580a ~ 9권 592b)
첫째, 행복에 있어서 왕도 정체적 인간, 명예 지상 정체적 인간, 과두 정체적 인간, 민주 정체적 인간, 그리고 참주 정체적 인간이 있는데, 행복의 순서도 이와 같다.
둘째, 나라에 세 부류가 있듯이 각자의 혼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지혜를 사랑하고(φιλοσοφον, 필로소폰, phliosophic) 배움을 좋아하는(φιλομαθες, 필로마테스, philo-math) 부분, 명예를 사랑하고(φιλοτιμον, 필로티몬) 이기기를 좋아하는(φιλονικον, 필로니콘) 부분, 그리고 이익을 탐하며(φιλοκερδες, 필로케르데스) 돈을 좋아하는(φιλοχρηματον, 필로크레마톤) 부분이다. 이 중에 이익을 탐하는 자들은 이익을 얻음으로써 얻는 즐거움 외에 다른 것을 보잘것없이 여기고, 명예를 탐하는 자들은 명예를 얻음으로써 얻는 즐거움이 없다면 지혜를 얻음으로써 얻는 즐거움을 아무것도 아니라 여기지만, 지혜를 탐하는 자들은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나아가 실재(το ον)에 대한 관상(θεα)이 주는 즐거움을 혼자서만 누린다. 따라서 이들이 가장 행복하다.
3. 결론: 시가가 아니라 학문을 가르쳐야 한다. (10권 595a ~ 10권 621d)
3-1) 결론(1): 최선자를 위해서도, 최선자 정체를 위해서도 시가가 아니라 학문을 해야 한다. (10권 595a ~ 10권 608b)
시가는 형상을 다루거나 만들지 않는다. 장인들은 형상을 담은 실물이라도 만들어내지만, 시가는 심지어 그 실물조차 다루거나 만들지 않는다. 즉 시가는 참된 인식에도 다가갈 수 없지만, 형상을 본뜬 실물을 제작하지도 못하고 그저 모방에 머물 뿐이다. 이들에게 폴리스의 교육을 맡길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폴리스의 교육은 참된 인식을 다루는 철학(학문)에 맡겨야 한다.
3-2) 결론(2): 덕에 대한 가장 큰 보상 (10권 508b ~ 10권 621d)
먼저 혼의 불멸에 대해 언급한 후, ‘올바른 삶’에 대한 보상이 살아있을 때는 물론 죽어서도 매우 큰 것이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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