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글은 당신이 소위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님을 밝혀둡니다. 당신이 어떤 삶의 양식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지는 당신의 가치판단에 달린 것이지 남이 정해줄 것이 아닙니다. 만약 당신이 '저녁형 인간'으로 살고자 한다면, 그렇게 살아도 됩니다. 다만,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은데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특히 수험생들에게 있어 소위 '저녁형 인간'들이 느끼는 고통은 결코 작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어지간한 시험들은 대부분 아침부터 치르게 되어 있는데,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어렵습니다.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물적(物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물적 존재라는 말은 우리가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어쩌면 그동안 당신 자신의 '나약한 의지'를 탓하며 괴로워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의 '의지'를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의지 또한 생물학적 현상의 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우리 몸의 작동원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강인한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 몸의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이 글을 읽기 전에, 혹은 이 글을 읽은 후에 제가 예전에 써두었던 "수험생의 자기관리"라는 글을 한 번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글은 꾸준한 수험생활을 위하여 생활습관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수면위생을 건강하게 관리하기 위하여 갖춰야 할 생활습관의 예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빛 조절과 규칙적인 식사 및 운동습관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하루아침에 생활습관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저녁형 인간'이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반대로 '아침형 인간'이 '저녁형 인간'이 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생체시계가 정확히 24시간이 아니라 그것보다 조금 더 긴 24.1~24.3시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생체시계는 지구상 생명체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납니다. 주로 주행성인 동물들이 24시간보다 약간 더 길고, 야행성인 동물들은 24시간보다 약간 짧은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인간을 암실(暗室)이나 빛이 완전히 차단된 동굴에서 며칠간 생활하게 하면 잠을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조금씩 뒤로 밀리게 되는 것을 확인한 실험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24시간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침에 밝아오는 햇빛 때문입니다. 생체주기라는 것을 미시적으로 살펴보면 결국 일련의 생화학 반응의 패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 속에서 일어나는 생명현상들은 미시적으로는 화학적 반응으로 나타나고, 이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는 데에는 일정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만약 우리 몸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들이 급격하게 일어났다면 생명현상이라는 것도 나타날 수 없었을 겁니다. 즉, 우리의 뇌 속 생체시계 역할을 하는 세포들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화학반응들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24시간보다 약간 더 긴 주기를 갖고 순환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주기(日週期) 가운데 특정 시점에 밝은 빛을 쏘이면 그때에는 그 반응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주기가 살짝 앞당겨져서 우리는 24시간을 주기로 하루 일과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지요.(이 반응이 우리가 아침에 햇빛을 쬐면 활성화되는 세로토닌 합성입니다.)
문제는, 우리 몸은 기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10시에 일어나서 12시에 밖에 나가 처음으로 햇빛을 쐬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아침 7시에 일어나서 9시에 밖에 나가 햇빛을 쐰다고 해서 갑자기 아침형 인간이 되지 않는 것이죠. 만약 그랬다면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한다 해도 시차적응을 하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었어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하루에 앞당기거나 뒤로 미룰 수 있는 시차는 기껏해야 30분 내지 1시간 정도가 고작입니다. 실제로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하는 경우 시차적응을 하는 데에는 대략 2~3주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이면 시차가 12시간이 차이가 나고 이를 2~3주 걸려 적응한다면, 이를 하루 단위로 환산해보면 34~51분 정도가 됩니다. 그나마 이것은 물리적으로 강제된 환경적 조건이 갖춰진 경우에 해당합니다. 이것을 인간이 '강인한 의지'만으로 해낸다는 건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이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몸을 가진 물적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우리의 생활습관을 어떤 방식으로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인지, 그 실마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연법칙의 한계 안에서만 무언가 변화를 꾀할 수 있고, 우리의 생활습관은 하루에 30분 정도를 앞당기거나 미룰 수 있는 것이 한계입니다. 그리고 그 앞당기거나 미루는 방법은 바로 아침에 햇빛을 쐬는 시간을 조절함으로써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밖에 모든 생활습관들을 하루에 딱 30분씩만 앞당겨서 해보면 어떨까요? 공부하는 시간, 운동하는 시간, 밥 먹는 시간, 그리고 잠에 드는 시간까지 모두 하루에 딱 30분씩만 앞당기는 거지요. 물론, 이것도 지치고 피곤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30분이 아니라 20분 내지 15분씩만 앞당겨도 좋습니다. 당장 내일부터 '아침형 인간'이 되려 하지 말고, 한 한 달 정도 계획을 세워 조금씩 바꾸어 보세요. 아마 불과 사흘 만에 실패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의 생활습관이 너무 불규칙하여 이러한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면, 그 경우에는 과학기술의 도움을 얻는 방법도 있답니다. 수면의학과나 신경과를 찾아가 의사선생님께 상담을 받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수험생임을 밝히고, 또 자신이 병원을 찾은 이유가 단지 오늘 하루 잘 자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한 수면습관을 만들기 위해서임을 밝히는 것이랍니다. 아마 병원에서는 멜라토닌을 처방해주실 것이고, 당신의 상황에 따라 몇 시에 복용해야 할 것인지 알려주실 겁니다. 그리고 아마 하루에 30분 정도씩만 앞당기라고도 말씀하실 겁니다.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1
당신은 잘 해낼 수 있을 겁니다. :)
※ 유의사항
참고로 저는 의사가 아니며 로스쿨 재학 중인 일개 수험생입니다. 다만, 오늘 쓴 글의 바탕이 된 지식은 제가 그동안 수면지속 문제로 의사선생님께 상담받았던 내용과 유튜브 채널 "신원철의 꿀잠튜브" 등을 통해 축적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게다가 이 글은 문과생들도 읽기 편하게 작성한 것이라서 이 글 자체는 전문지식이 아니며, 세부적인 부분에서 잘못된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 글을 보시는 분들 가운데 의사선생님들이 계시다면 문제가 되는 부분은 댓글로 지적해주세요. 확인 후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 제발! 의사선생님께 처방 받고 복약지도 받은 대로 복용하실 것을 권장합니다. 특히 멜라토닌 해외직구해서 제멋대로 드시지 마세요. 해외직구 멜라토닌은 대부분 속방형이라 당장 잠드는 데에는 빠르지만, 수면지속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답니다. 요즘 약이란 건 단지 특정 성분과 그 함량으로만 효과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니 제발 전문가의 처방과 복약지도를 따르도록 합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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